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잘생겨야 재미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묘하게 화가 나지만(화 내면 지는 거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외모와 유머러스함에 대한 관계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가령 ‘잘생긴놈이 친 드립이 재미있는가?’, ‘재미있는 친구가 잘생겨보이는걸까?’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나름 정리해 보았다.
<유머와 외모에 관한 세가지 관점>
(Tornquist & Chiappe, 2015)
(1) 진화적 적합성의 지표로서 유머
유머러스 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공감, 분위기 파악(눈치), 순발력 등등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개그 뒤에 종종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것이다. 즉 적합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해서 적절히 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넓은 범위의 지능에 해당하며 특히 사회적 상호작용이 생존과 재생산에 매우 중요한 인간에게 주요 능력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지능을 만나는 사람마다 디테일하게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종합 지능검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좀 더 직관적이고 빠르게 파악가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지표로 유머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마치 개개인의 건강상태를 알기 위해 건강검진 결과표를 보여주기 보다 근육질 정도를 보고 대략 판단하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근육질이라고 해도 성인병이 있고 상태가 안 좋을 수 있지만 이는 쉽고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이런 지표를 활용한다. 유머 또한 이와 유사한 지표라는 것이다.
게다가 몇몇 연구에서는 실재 유머를 잘 하는 사람(빵 터뜨릴 수 있는 사람)은 실재 지능요인 중 일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Howrigan & MacDonald, 2008). 위 연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 표는 유머 점수에 대한 설명변수의 영향력이다. 첫번째 변수인 지능(general intelligence)이 정적 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결과를 보면 유머능력은 진화적 적합성 중 가장 큰 요인인 생존과 재생산에 유리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것이 맞다면 개그를 잘하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에 힘이 실리고 나도 모르게 묘한 안도감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현실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잘생기니까 재미있는 케이스를 빼 놓고 생각하더라도 술자리에서 빵빵 터트리는 것이 과연 그렇게 성적 매력을 주는지 의문이 든다. 또 유머는 사람을 매력적이게 할 수는 있다 하여도 그 영향력이 그리 크진 않을 수 있다. 아래는 이러한 생각을 지지해줄 이론이다.
(2) 관심의 표현으로서 유머
이 관점은 유머는 그 자체로 매력에 영향을 주기 보다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지표라는 것이다. 많은 자리에서 누군가와 잘해보고 싶을 때, 특히 남성들은, 유머를 사용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이러한 행동은 “나 지금 너와 좀 잘 되어 보고싶어”라는 암묵적인 신호인 것이다. 물론 이것이 꼭 성적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닌 관계를 우호적으로 형성하고 싶을 때 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유머는 상호적이다. 즉 누군가 유머를 통해 관심을 표현하면 상대는 이에 대한 간접적 답변으로 호응을 한다. 만약 상대가 별로 맘에 들지 않을 경우 갑자기 분위기 싸하게 만들 수 있다. 관심의 표현을 완전히 거절하기 싫은 경우 억지 웃음을 짓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이를 눈치 챈다. 물론 눈치 없이 계속할 때가 있는데 이것만큼 추한 상황도 없을 것이다. 반면 누군가와 정말 잘 해 보고싶다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개그를 하더라도 빵 터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이전의 유머가 잘생김에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이는 연구는 사실 인과관계가 바뀐 것이다. 듣는 이는 개그를 듣기 전 이미 상대에 대한 매력 평가를 마쳤으며 웃을지 말지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가령 외모평가 결과 잘생긴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의 개그를 비교할 때 외모를 볼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즉 잘생긴 그룹에서는 외모를 볼 수 없으면 개그의 재미가 떨어지고 잘생김이 덜한 그룹에서는 외모를 보면 개그의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Cowan & Little, 2013).
이는 외모가 유머의 재미에 전부는 아니라 하여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그가 단순 호감 표시에 그친다면 많은 사람들은 매력적이게 보이기 위해 많은 모임에서 개그맨이 되고자 하는데 이들이 단순히 인과관계를 헷갈렸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잘생겨서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재미있으면 잘생겨보일거라 착각 했다고 하면 한두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류를 보였다는 것인데 이는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3) 사회적 유사성에 대한 숨겨진 지표로서 유머
또 다른 이론으로 유머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대상의 정보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나와의 적합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유머 경험의 가장 큰 조건은 '기대 위반'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어떠한 개그를 쳤는데 상대방이 진심으로 재미있어 한다면 그와 나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현상에 대한 거의 유사한 기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그 사람과 나의 유사성과 적합성을 알기 위한 중요 지표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유사한 개그경험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대가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Curry & Dunbar, 2013) .
가령 여러 개그에 대한 평가를 사람들에게 시킨뒤 2주 뒤에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지를 보여주며 이 사람들에 대한 매력도를 평가 하게 하였다. 그럴 경우 나와 유사한 개그경험을 한 사람일 수록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하였다. 나아가 그 대상에 대한 이타행위(포인트 나눔)또한 증가 하였다.
즉 어떤 부분에 대해 나와 동일하게 빵터지거나 정색한다면 그 사람은 나와 "문화"를 공유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생활의 예를 들어보자.
직장인 여성 A씨는 주말에 B라는 남성과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옆자리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난 인종차별주의자하고 중국인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이런 말에 B라는 남성이 다음과 같이 반응하였다. 1) 빵터지며 웃음을 참지 못한다. 2) 정색한다. |
만약 1번의 경우라면 우리가 기대 할 수 있는 것은 B남성은 중국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며 "인종"범주에 그들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대위반을 재미있어 한 것이라 추론 가능하다. 만약 2번이라면 그는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 만약 알고보니 A여성의 부모님이 중국에서 귀화했다고 한다면 B의 1, 2번 대응에 따라 그에 대한 호감도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만약 A여성도 같이 진심으로 빵터진다고 하면 둘은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으며 호감도가 증가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앞서 말한 세가지 관점 이외에도 유머와 외모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다양하다. 앞서 말한 것 중 어느것도 압도적인 정설이 되진 못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세가지 다 맞는 것 같다. 원래 심리학은 황희정승처럼 다 어느정도 맞다고 하는게 가장 안전하긴 하다.
혹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고>
Cowan, M. L., & Little, A. C. (2013). The effects of relationship context and modality on ratings of funnines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54(4), 496–500. https://doi.org/10.1016/j.paid.2012.10.020
Curry, O. S., & Dunbar, R. I. M. (2013). Sharing a joke: The effects of a similar sense of humor on affiliation and altruism.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34(2), 125–129. https://doi.org/10.1016/j.evolhumbehav.2012.11.003
Howrigan, D. P., & MacDonald, K. B. (2008). Humor as a Mental Fitness Indicator. Evolutionary Psychology, 6(4), 147470490800600. https://doi.org/10.1177/147470490800600411
Tornquist, M., & Chiappe, D. (2015). Effects of humor production, humor receptivity, and physical attractiveness on partner desirability. Evolutionary Psychology, 13(4). https://doi.org/10.1177/1474704915608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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